“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눅 21: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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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시대의 징조와 우리의 현실
서론: 시대의 징조와 우리의 현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나갔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믿음의 시험대 앞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칼과 창, 사자 굴과 불구덩이 앞에서 신앙을 지켜야 했다면, 우리는 훨씨 더 교묘하고, 넘어지기 쉬운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의 영혼이 겪는 고통은 때로는 순교자들의 그것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아닐까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편리함, 물질적 풍요가 약속하는 안락함, 그리고 끝없는 자아실현의 기회들... 이 모든 것이 마치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뱀의 속삭임이, 오늘날에는 "네가 이 길을 따르면 진정한 행복을 얻으리라"는 세상의 달콤한 약속으로 들려옵니다.
더욱이 인간 이성에 대한 맹신적 신뢰가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놓습니다. 과학은 우주의 신비를 하나씩 밝혀내고, 철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며, 심리학은 영적 경험마저 뇌의 작용으로 설명하려 듭니다. "이 모든 것을 과연 하나님 없이도 설명할 수 있다면?", "내가 믿는 것은 단순한 심리적 위안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때로는 사자 굴보다 더 무서운 영혼의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고뇌야말로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을 통해 위대한 신앙의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십자가이며, 동시에 우리를 더 깊은 은혜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0절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를 하나님께서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세상의 영광과 지혜가 절정에 달한 이 시대야말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더욱 찬란히 빛나는 때가 아닐까요?
1. 현대 기독교인의 고난과 도전
1. 현대 기독교인의 고난과 도전
특히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먼저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일반적 고난이 있습니다. 경제적 불황, 기업의 구조조정, 자영업자들의 폐업 위기,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불안정…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이 우리의 어깨를 누릅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고난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차별과 조롱입니다. 직장에서 “또 교회 간다고?” 하는 빈정거림을 들어보신 적 없습니까? 자녀가 학교에서 “너희 엄마는 왜 그렇게 성경책만 들고 다녀?”라는 놀림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까? SNS에서 기독교를 비하하는 글을 보며 가슴 아파하신 적은 없습니까?
더구나 이 시대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도전들로 가득합니다. “과학의 시대에 아직도 창조를 믿나요?”, “모든 종교는 결국 같은 곳으로 가는 거 아닌가요?”, “왜 그렇게 구시대적인 도덕관을 고집하시나요?”라는 질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더욱 가속화된 비대면 문화는 교회 공동체의 본질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전만큼 성도들이 모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배당에 모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 이제는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2. 예수님이 보신 종말의 징조
2. 예수님이 보신 종말의 징조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앙의 과정에서 반드시 어려움을 겪에 됨을 오늘 본문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신앙의 과정은 신앙이 아니고서는 이길 수 없는 그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눅 21:10-11).
신앙은 그냥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이어서 주님은 더 개인적인 박해도 예고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눅 21:17). 이것은 단순한 재난 예고나 두려움을 주시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의 한 부분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도 두려움과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서 메시아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3. 속량의 깊은 의미와 소망
3. 속량의 깊은 의미와 소망
성경에서 ‘속량’은 빚이나 포로로 잡히고, 죄의 사슬에 묶여 스스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를 위해, 누군가가 대신 값을 치러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삶과 신분으로 회복시키는 강력한 개념입니다. 노예나 빚진 사람을 대신 몸값을 치르고 해방시키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속량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출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잘 보여 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사 54:5).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구속자’가 되신다는 선언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의 굴레와 삶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능력을 드러냅니다. 바로 이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하셨습니다. 결국 ‘속량’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절망과 결박에서 끌어내실 뿐만 아니라, 그 후에는 거룩하고도 새로운 신분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지금도 우리 앞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쌓여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인생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던 우리를 건져 내시고, 새로운 존재로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구속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약속을 이미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이 ‘속량의 은혜’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유와 소망은 전능하신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신 주님의 약속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을 믿고 나아가는 이들에게, 참된 평강과 회복이 임할 것입니다.
4. 주의 날의 이중성
4. 주의 날의 이중성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눅 21:27).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주의 날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요, 두려움의 날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소망의 날이요, 영광의 날입니다.
이는 마치 노아의 시대에 같은 물이 악인에게는 심판이 되었으나, 노아의 가족에게는 구원의 방주가 되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백성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금이 불에서 연단되는 것 같이, 그들이 연단을 받을 것이요” (슥 13:9).
지금 우리가 겪는 조롱과 멸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되 환난과 곤고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있으리라…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라" (롬 2:9-10).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모든 멸시는 장차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5. 우리의 실천적 신앙
5. 우리의 실천적 신앙
그렇다면 이러한 소망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첫째,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36). 깨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타협을 요구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건데...”, “시대가 변했잖아요.” 그러나 깨어있는 성도는 이런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둘째,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인내로써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 인내는 단순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욥이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고난 중에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고 계십니까?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그들을 연단하여 금을 연단하는 것과 은을 연단하는 것같이 연단할 것이라" (말 3:3).
셋째, 소망 가운데 기뻐해야 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요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사 65:17). 우리의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넷째,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3-25).
이 시대에 홀로 신앙생활 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믿음의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한 사람이 찬양하면 백 명의 찬양이 되고, 한 사람의 기도는 온 교회의 기도가 됩니다.
결론: 우리의 소망과 사명
결론: 우리의 소망과 사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때로는 한숨이 나오고, 때로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해 “너희가 믿는 그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고백을 기억하십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 42:5).
여러분, 우리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어리석다 하고, 우리의 소망을 헛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이 고난의 때가 오히려 우리를 정금같이 단련하는 시간임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세상의 조롱에 부끄러워하며 신앙을 감출 것입니까? 아니면 더욱 담대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것입니까? “너희가 사람에게 하는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직장과 일터가 바로 선교지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바로 예배소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한 영혼 한 영혼이 바로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보배로운 영혼들입니다. 비록 지금은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할지라도,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 영광스러운 날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합시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 25:21)라는 주님의 칭찬을 함께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일어나 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갑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속량이 가까웠습니다.
아멘.
